인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즉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인간은 일정 나이가 되면 동일한 질문을 묻도록 프로그램이 되어있다. 마치 컴퓨터에서 ‘설치하시겠습니까?’나 ‘약관에 동의하시겠습니까?’등을 일정 단계에서 꼭 묻듯이 말이다.
예를 들어 한국 나이로 열 살 정도가 되면 갑작스레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자신보다 먼저 죽을 존재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슬픔과 공포에 떤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당연히 성적인 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지만 부모에게 입 밖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드물다. 그러나 요즘은 중학교만 들어갔으면 ‘알 건 다 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초반부터 성적인 것을 윤리적인 문제에 묶어 너무 교훈적으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후일에 억압된 성심리가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 걱정스러워도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하는 대견한 눈으로 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 나이로 열 살 정도가 되면 갑작스레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자신보다 먼저 죽을 존재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슬픔과 공포에 떤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당연히 성적인 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지만 부모에게 입 밖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드물다. 그러나 요즘은 중학교만 들어갔으면 ‘알 건 다 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초반부터 성적인 것을 윤리적인 문제에 묶어 너무 교훈적으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후일에 억압된 성심리가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 걱정스러워도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하는 대견한 눈으로 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입학기가 되면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이때 학교 내에서 그때까지 별 무리 없이 친하던 아이들이 낯설어지고 내가 이렇게 다르게 생겼는데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묻게 된다. 그리고 학우들도 우리 자녀들이 자신과 다르게 생긴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란 걸 느낀다. 이때가 자아의 완성단계이다. 이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해주지 못하면 이제까지 잘 자라온 자아가 왜곡된다. 다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격이 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나이 정도의 학생들은 친구가 절실하다.
이 문제를 어른에게 물어보면 너무 애국적인 대답을 하거나 너무 국제적인 대답을 한다. 예를 들어 “네 조국은 한국이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불란서 사람이 될 것 같아?”라든가 “너를 한국 사람 만들려고 내가 이 고생하면서 여기서 키운 줄 알아? 학교를 보내도 일부러 한국 애들 없는 데를 보냈어”의 답은 모두 오답이다. 그리고 이 오답은 학생들이 장래에 대해 생각할 때 한없이 자신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뿌리를 뽑는 답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답을 찾아보자. 이 아이들은 두 가지의 정체성을 다 가져야 한다. 정체성은 정통성과 달라서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세련되고 지혜롭게 가진 자아를 국제적인(international)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두 가지가 잘 섞이지 않고 자신 속에서 충돌하는 사람은 다국적 인간(multinational)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미 다국적 인간의 유형에 속해져 있다. 이들을 국제적 인간으로 탈바꿈시킬 때 이들은 밝은 장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 갈 것이다.
이 문제를 어른에게 물어보면 너무 애국적인 대답을 하거나 너무 국제적인 대답을 한다. 예를 들어 “네 조국은 한국이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불란서 사람이 될 것 같아?”라든가 “너를 한국 사람 만들려고 내가 이 고생하면서 여기서 키운 줄 알아? 학교를 보내도 일부러 한국 애들 없는 데를 보냈어”의 답은 모두 오답이다. 그리고 이 오답은 학생들이 장래에 대해 생각할 때 한없이 자신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뿌리를 뽑는 답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답을 찾아보자. 이 아이들은 두 가지의 정체성을 다 가져야 한다. 정체성은 정통성과 달라서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세련되고 지혜롭게 가진 자아를 국제적인(international)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두 가지가 잘 섞이지 않고 자신 속에서 충돌하는 사람은 다국적 인간(multinational)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미 다국적 인간의 유형에 속해져 있다. 이들을 국제적 인간으로 탈바꿈시킬 때 이들은 밝은 장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 갈 것이다.
올바른 정체성 위해 꼭 가르쳐야 할 3가지
이를 위해서 우리 기성세대가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 이는 애국심 때문도 아니고 부모가 고루해서도 아니다. 자녀의 현실이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살아야 하는 이방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단이라는 축구 선수가 국제적인 이유는 물론 신기에 가까운 그의 재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가 당당히 알제리 출신임을 밝히는 용기 때문이다.
이 용기는 올바른 자아 형성에서 나온다. 알제리인이 프랑스인에게는 가장 불쾌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거의 늘 느끼면서 살고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는 왕년의 야구 영웅 장훈 선수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밝힌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우선 자녀에게 한국어를 어려서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녀와의 소통 창구는 한국어여야 한다. 게다가 후일 이들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 경제 강국 사이를 오가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 고급 기술을 요하는 세계시장에서 일거에 강대국이 된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는 그만한 정신적 지적 유산이 있었기 때문임을 터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은 결코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부르며 한 지도자의 엄청난 카리스마에 끌려 이룬 것도 한 많은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적 투쟁의식이 가져 온 결과가 아니다. 우리 역사는 학문에 대한 경외의 역사였으며 교육에 대한 신성한 존중의 역사였다. ‘군사부일체’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력을 중시한 기사도나 사무라이의 나라는 폭력을 중시했으니 ‘두사부일체’의 국가였던 것이다.
한국은 역사 속에서 몇 번의 침략을 당했고 몇 번의 국권 상실기를 거쳤다. 그러나 왜 힘이 강하고 폭력적이어서 이웃 나라를 침략했어야 자랑스러운 역사란 말인가? 그 폭력을 키울 시간에 학문을 연마하고 정신을 고양하며 문화에 매진 한 것이 치욕이라는 것인가 말이다. 그 학문이 우리 유전자 어딘가에 그려져 있어 우리 국민이 세계 어디서나 충분히 지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빈약한 땅덩어리에서 그 많은 인구가 이 정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지식과 교육과 성실함의 결과이다. 조선 정조 시대에도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7위 정도였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아직 우리는 제국주의라는 팽창주의의 식민 사관에 얽매어 있어 보인다.
학생들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 소속된 곳을 쉽게 험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그러니까 한국은 틀려먹었어, 아직 한국 사람들은 안 돼”를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그때 자녀들은 뿌리를 위협받게 된다. 학교가 싫어지고 자신의 노란 피부를 속박이요 거부하고 싶은 운명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는 외국인을 공연히 경외하거나 공연히 증오하는 그런 소수 집단의 심리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 역사가 위대한 역사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그리 화려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역사 속의 정신과 의식은 수려했다. 김소운님은 일제 강점기 때에 ‘나의 어머니가 문둥병 환자라 하더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이 때 어머니란 일제에 짓밟힌 처절한 조국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어머니는 젊고 세련되고 명품 가방쯤은 들고 다니는 맵시 있는 여성으로 거듭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어머니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그때 자녀들은 자신이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임을 깨달을 것이다.
[윤철오 : 현 International School of Paris Coordinator de Universite, Professeur de Litterature/ 교육 칼럼니스트/ 상담 cyoono@hanmail.net].
이를 위해서 우리 기성세대가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 이는 애국심 때문도 아니고 부모가 고루해서도 아니다. 자녀의 현실이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살아야 하는 이방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단이라는 축구 선수가 국제적인 이유는 물론 신기에 가까운 그의 재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가 당당히 알제리 출신임을 밝히는 용기 때문이다.
이 용기는 올바른 자아 형성에서 나온다. 알제리인이 프랑스인에게는 가장 불쾌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거의 늘 느끼면서 살고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는 왕년의 야구 영웅 장훈 선수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밝힌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우선 자녀에게 한국어를 어려서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녀와의 소통 창구는 한국어여야 한다. 게다가 후일 이들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 경제 강국 사이를 오가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 고급 기술을 요하는 세계시장에서 일거에 강대국이 된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는 그만한 정신적 지적 유산이 있었기 때문임을 터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은 결코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부르며 한 지도자의 엄청난 카리스마에 끌려 이룬 것도 한 많은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적 투쟁의식이 가져 온 결과가 아니다. 우리 역사는 학문에 대한 경외의 역사였으며 교육에 대한 신성한 존중의 역사였다. ‘군사부일체’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력을 중시한 기사도나 사무라이의 나라는 폭력을 중시했으니 ‘두사부일체’의 국가였던 것이다.
한국은 역사 속에서 몇 번의 침략을 당했고 몇 번의 국권 상실기를 거쳤다. 그러나 왜 힘이 강하고 폭력적이어서 이웃 나라를 침략했어야 자랑스러운 역사란 말인가? 그 폭력을 키울 시간에 학문을 연마하고 정신을 고양하며 문화에 매진 한 것이 치욕이라는 것인가 말이다. 그 학문이 우리 유전자 어딘가에 그려져 있어 우리 국민이 세계 어디서나 충분히 지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빈약한 땅덩어리에서 그 많은 인구가 이 정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지식과 교육과 성실함의 결과이다. 조선 정조 시대에도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7위 정도였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아직 우리는 제국주의라는 팽창주의의 식민 사관에 얽매어 있어 보인다.
학생들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 소속된 곳을 쉽게 험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그러니까 한국은 틀려먹었어, 아직 한국 사람들은 안 돼”를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그때 자녀들은 뿌리를 위협받게 된다. 학교가 싫어지고 자신의 노란 피부를 속박이요 거부하고 싶은 운명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는 외국인을 공연히 경외하거나 공연히 증오하는 그런 소수 집단의 심리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 역사가 위대한 역사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그리 화려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역사 속의 정신과 의식은 수려했다. 김소운님은 일제 강점기 때에 ‘나의 어머니가 문둥병 환자라 하더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이 때 어머니란 일제에 짓밟힌 처절한 조국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어머니는 젊고 세련되고 명품 가방쯤은 들고 다니는 맵시 있는 여성으로 거듭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어머니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그때 자녀들은 자신이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임을 깨달을 것이다.
[윤철오 : 현 International School of Paris Coordinator de Universite, Professeur de Litterature/ 교육 칼럼니스트/ 상담 cyoon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