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자기소개서에서 한국식 겸양은 금물
요즈음은 한국도 고등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한단다. 물론 4.19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광화문 주변의 고등학교들-지금은 강남으로들 갔지만-의 학생들은 시위대에 합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누구나 시위에 참여할만한 국민 공공의 적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시위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어서 사뭇 그 의미가 달리 느껴진다. 어찌 보면 당돌하고 어찌 보면 당당하다. 대입제도가 바뀌는 것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기에 싫다고 말할 줄 알게 된 세대. 기대와 우려의 눈으로 보게 되는 걸 보면 어찌할 수 없는 기성세대인 건 분명하다.
지난 번 프랑스에서 고등학생들이 데모를 할 때 어느 학생의 부모가 TV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봤다. 그 부모는 아침에 일찍 학생을 깨워 시위에 내보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아이들이 드디어 민주주의를 체험할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는 프랑스인이 “무슨 시위냐”고 공부나 하라고 붙잡는 한국인 엄마보다 더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깨워 내보내는 엄마와 붙잡는 엄마는 다른 것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만큼 문화가 다르다. 우리는 사실 직접적인 표현의 문화를 사모하는 편은 아니다. 간접적이며 은근한 문화이다. 그런 만큼 겸양지덕을 중요시 여긴다. 참 따뜻하고 구수함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또 그런 문화권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점심시간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말하기를 좋아하는 국민들이다. 교무실에서 밥을 함께 먹는데 벌써 밥을 열 그릇은 비웠을 시간인데도 프랑스 선생들은 여전히 떠들고만 있다. 그리고 한 시간이 다 지나갈 즈음에 다시 레인지에 데워 먹으며 이 학교는 점심 시간이 짧다고 투덜거린다. 먹을 때도 입의 주 기능은 수다떨기이다.
한국인은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일의 결과나 성적으로 자신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가만있다 보면 남들은 다 챙기는 것을 나는 못 챙긴다. 예를 들어 학교에 입학할 때 교수와 면접을 하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낼 때 결코 겸양의 미덕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를 잘 포장해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이 “자신의 논문 초본을 교수에게 보이며 한다고는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라는 투의 말을 하면 결코 통과될 리가 없다. 교수는 그 말을 겸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즉 쓴 사람도 자신 없어 하는 논문을 뭐 하러 검토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교수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영어를 잘 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일단 겸손하게 ‘조금합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이 또한 잘 생각해봐야 한다. 독해와 단어라면 자신 있는 것이 한국식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무기가 아닌가 말이다. 따라서 이해는 잘 합니다 정도로 이야기해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자기 소개서를 쓸 때이다. 인터뷰나 자기소개서 등을 쓸 때 꼭 피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결코 부정적인 이유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왜 이 학교를 택했냐는 질문에 지난 번 학교가 나빠서라든가 불어를 못해서 등의 이유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곳의 특색을 미리 살펴보고 자신이 택한 곳이 왜 좋은 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약간 부정적으로 답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돼 있다. ‘차린 것도 없이 모셨네요’의 겸양이 한국식 겸양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말을 들은 프랑스인은 그럼 왜 오라고 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이나 무엇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기 쉽다.
두 번째로 피해야 할 것은 타인의 선택을 이유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선택은 스스로가 한 것이어야 한다. 즉 부모님의 권유로 혹은 지난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등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고른 것이고 따라서 책임도 내가 진다라는 당당함을 보여야 한다. 부모님이 학교에 가서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얘가 한다고는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등의 말은 절대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덕인 것이 이곳에서는 독이 될 수 있다. '나'를 포장하고 '나'를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그런 곳에 우리는 있는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시위에 참여할만한 국민 공공의 적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시위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어서 사뭇 그 의미가 달리 느껴진다. 어찌 보면 당돌하고 어찌 보면 당당하다. 대입제도가 바뀌는 것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기에 싫다고 말할 줄 알게 된 세대. 기대와 우려의 눈으로 보게 되는 걸 보면 어찌할 수 없는 기성세대인 건 분명하다.
지난 번 프랑스에서 고등학생들이 데모를 할 때 어느 학생의 부모가 TV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봤다. 그 부모는 아침에 일찍 학생을 깨워 시위에 내보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아이들이 드디어 민주주의를 체험할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는 프랑스인이 “무슨 시위냐”고 공부나 하라고 붙잡는 한국인 엄마보다 더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깨워 내보내는 엄마와 붙잡는 엄마는 다른 것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만큼 문화가 다르다. 우리는 사실 직접적인 표현의 문화를 사모하는 편은 아니다. 간접적이며 은근한 문화이다. 그런 만큼 겸양지덕을 중요시 여긴다. 참 따뜻하고 구수함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또 그런 문화권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점심시간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말하기를 좋아하는 국민들이다. 교무실에서 밥을 함께 먹는데 벌써 밥을 열 그릇은 비웠을 시간인데도 프랑스 선생들은 여전히 떠들고만 있다. 그리고 한 시간이 다 지나갈 즈음에 다시 레인지에 데워 먹으며 이 학교는 점심 시간이 짧다고 투덜거린다. 먹을 때도 입의 주 기능은 수다떨기이다.
한국인은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일의 결과나 성적으로 자신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가만있다 보면 남들은 다 챙기는 것을 나는 못 챙긴다. 예를 들어 학교에 입학할 때 교수와 면접을 하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낼 때 결코 겸양의 미덕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를 잘 포장해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이 “자신의 논문 초본을 교수에게 보이며 한다고는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라는 투의 말을 하면 결코 통과될 리가 없다. 교수는 그 말을 겸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즉 쓴 사람도 자신 없어 하는 논문을 뭐 하러 검토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교수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영어를 잘 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일단 겸손하게 ‘조금합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이 또한 잘 생각해봐야 한다. 독해와 단어라면 자신 있는 것이 한국식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무기가 아닌가 말이다. 따라서 이해는 잘 합니다 정도로 이야기해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자기 소개서를 쓸 때이다. 인터뷰나 자기소개서 등을 쓸 때 꼭 피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결코 부정적인 이유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왜 이 학교를 택했냐는 질문에 지난 번 학교가 나빠서라든가 불어를 못해서 등의 이유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곳의 특색을 미리 살펴보고 자신이 택한 곳이 왜 좋은 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약간 부정적으로 답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돼 있다. ‘차린 것도 없이 모셨네요’의 겸양이 한국식 겸양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말을 들은 프랑스인은 그럼 왜 오라고 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이나 무엇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기 쉽다.
두 번째로 피해야 할 것은 타인의 선택을 이유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선택은 스스로가 한 것이어야 한다. 즉 부모님의 권유로 혹은 지난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등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고른 것이고 따라서 책임도 내가 진다라는 당당함을 보여야 한다. 부모님이 학교에 가서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얘가 한다고는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등의 말은 절대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덕인 것이 이곳에서는 독이 될 수 있다. '나'를 포장하고 '나'를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그런 곳에 우리는 있는 것이다.
[윤철오: 현 International School of Paris Coordinator de Universite, Professeur de Litterature/ 교육 칼럼니스트/ 상담 cyoon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