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가 공존하는 이유
공존의 이유와 ‘개방’이라는 열매
이제는 벌써 몇 년 전이 되어버렸다. 20세기 말인지 21세기 초인지도 헷갈린다. 아무튼 신경숙 작가의 부석사가 이상문학상을 탔을 때의 일이다. 몇몇 심사 위원들이 수상작 선정 이유를 무척 멋있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의 선정 이유를 보며 '역시'라며 무릎을 친 적이 있었다. 바로 박완서님의 한 마디. 모든 사물은 그 사물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거리가 있는데 신경숙은 그 거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그 대상을 바라보는 데는 적절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이든 실체를 알기 위해서이든. 연인이든 부부든 자녀와 부모이든 민들레이든 비둘기이든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추하고 너무 멀면 결국 사라져 버린다. 이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이 곧 지혜가 아닐까 싶다.
문화마다 다른 ‘적정 거리’
그런데 이 거리의 감각이 문화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이 차이가 존재의 방식을 결정하는 주요 인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동질성이 강한 집단은 이 거리가 매우 가까워야 만족을 한다. 그래서 이질성이 강한 집단이 보면 뭔가 덜 문명화된 것 같고 덜 정리된 듯 보인다. 반면에 이질성이 강한 집단은 이 거리를 멀리 둔다. 일견 차가워 보이고 변덕스러워 보이며 그렇게 이기적일 수 없고 무책임해 보인다. 이 거리가 가까운 집단은 구성 인자들끼리의 인력이 강해서 다른 인자의 참여를 침입이라고 즉각 판정한다. 그러니 폐쇄적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성인자들 끼리는 정과 한을 되풀이하며 끈끈하게 살아간다. 이 거리가 먼 집단은 인자들끼리의 인력이 약하므로 다른 인자들의 침입도 우선은 참여라고 봐준다. 그러나 늘 외롭고 고독하다. 오만 한 듯한 표정의 마스크가 벗겨진 얼굴에는 덜 지워진 콤팩트 분 마냥 외로움이 지저분하게 얼룩져 있다. 한 사회의 제도 성립 역시 이 '거리의 개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이 거리가 매우 가깝다. 기본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유전적인 면에서도 동질성이 강하다. 따라서 한국이라는 집단 내의 소그룹까지도 거리를 더욱 좁히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곳에서 직장 생활하며 단 한 번도 한국에서의 화끈한 회식을 체험해 볼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은 교육제도도 폐쇄적인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들어가는 문이 좁다. 또 편입 등으로 들어 온 사람은 비주류로 그 속에서도 어느 정도 차별화를 감행해 버린다. 그러나 이 동질성이 주는 강력한 소속감이 한국의 급부상의 가장 큰 힘이었음은 누구도 부정 못 할 것이며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오천년을 버틴 힘이라는 것도 자랑거리이다. 파리를 드려다 볼작시면 각양각색의 인종이 살고 있을 뿐 아니라 파리를 국제적인 도시로 만들어 준 것도 기실은 파리지안의 힘은 아니었다. 소위 이방인들의 힘을 결집이었던 것이다. 러시아인도 아일랜드인도 미국인도 영국인도 파리에 오면 그들의 자랑스러운 지성과 문화의 선배들의 족적을 볼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파리는 이질적 집단이다. 그 머리도 몸통도 가슴팍도. 아니, 유럽 전체가 그렇다. 그래서 유럽은 갈수록 교육 제도를 개방하여 간다. 대학에 들어가기도 과를 바꾸기도 하물며 유학까지도.
폐쇄에서 개방으로 가는 한국 교육
문제는 세상은 개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논리 혹은 생존의 논리이다. 우리의 사회가 아무리 동질적이고 정과 사랑이 넘쳐도 세상에서 우뚝 서려면 우리의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폐쇄성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한국의 2008 교육 제도 개선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또한 유럽의 LMD도 고무적이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변화를 일단은 거부하려는 몸짓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미아로 남는 것이 아니라 국제 미아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세상에서 살아 갈 우리의 동지나 경쟁 상대는 늘 옆 책상에 앉는 철수나 영희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토미나 리챠드 혹은 플로랑스 등의, 얼굴도 모를 누구인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동질성을 버려서도 안 되고 버릴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폐쇄성의 이유를 알고 거리는 유지하되 개방이라는 지혜의 열매를 따먹어야 할 것이다. 아니, 개방이라는 열매를 지혜롭게 따먹어야 할 것이다.
[윤철오: 현 International School of Paris Coordinator de Universite, Professeur de Litterature/ 교육 칼럼니스트/ 상담 cyoono@hanmail.net]